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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 선언

마르크스와 레닌이라는 이름이 뒤늦게(?) 일세를 풍미하던 90년대초 대한민국에서 대학시절을 보낸 덕분에 어느 정도는 공산주의와 마르크시즘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대표적인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이 '공산주의자 선언'은 이제야 읽게되었습니다. 공산주의가 어떤 것인지 대충 알고, 그 이후 공산주의가 걸어온 역사를 보아 온 입장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사상의 원조인 마르크스와 엥겔스 본인들의 목소리를 듣는 묘미가 있었습니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전세계에 공산주의자들의 자신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핵심적인 주장을 천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논증보다는 현란한 수사를 동원하여 공산주의의 아이디어를 사람들에게 명징하게 드러낸 글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봉건사회가 자본가가 지배하는 근대 부르조아 사회로 변하는 것처럼, 부르조아 사회 또한 결국 프롤레타리아에게 사회의 주도권을 넘겨줄 수 밖에 없다고 저자들은 자신합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들의 전매특허인 유물론에 기반하여, 경제 시스템이 발전하고(저자의 용어로는 재산 관계의 변화), 이에 따라 주도적인 사회제도와 지배계급도 뒤바뀌며, 결국에는 지배 이데올로기까지 바뀌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상공업의 발전으로 생산력이 늘어나고 지리상의 발견으로 새로운 시장과 원료 공급처를 확보하면서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생산력은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되었고, 이러한 새로운 흐름에 과거 봉건사회의 길드 위주 생산시스템은 고도로 전문화된 분업으로 생산이 이루어지는 공장제 생산 시스템에 자리를 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대규모 산업체를 운영하는 부르조아들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지배계급으로 부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이들은 평합니다. 하지만 부르조아의 지배는 영원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저자들은 전망했습니다. 끝없는 이윤 추구의 욕망은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자본가들은 기업을 계속 대형화시키고 작은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이 격렬한 경쟁 과정에서 도태됩니다. 이들이 보기에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자본이라는 것은 무산계급 노동자들을 낮은 보수만 주고 일을 시켜서 벌어들인 이윤을 꾸준히 축적하여 만든 거대한 돈덩어리입니다. 자본은 노동자들의 노력 덕분에 얻은 것이지만 이걸 독차지하는 것은 부르조아 자본가들이라는 데서 모순이 발생한다고 저자들은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순은 오래갈 수 없으며, 경제와 사회를 무너뜨리는 공황이 당시에도 이미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는 사실은 부르조아지 계급 몰락의 전조라는 것이 저자들의 진단입니다. 생산력의 증가는 결국 과잉생산으로 이어지게 되며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 공장도 멈추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입니다.결국 잃을 것 없는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체제는 공산주의로 이행하여 자본을 국유화하게 될 것이라고 저자들은 자신합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전위로서 새시대를 열어갈 것이 바로 자신들, 즉 공산주의자들이라는 것이 이 공산주의자 선언의 핵심 주장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이러한 마르크스의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0세기 중반,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정치가들과 자본가들은 자기들 입장에서 디스토피아가 될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하는 것을 당연히 원치 않았습니다. 이들은 강한 정부를 만들어 기간산업과 공공서비스 산업을 국유화하고 사회복지 정책을 통해 부를 재분배하였습니다. 공산주의의 좋은 점을 체제에 반영했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 그 결과 20세기 중후반 자본주의는 공황을 극복하고 다시 한 번 번영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공산주의의 대표국가 소련은 정치적으로는 국민을 탄압하는 독재국가로 전락하고 경제적으로는 인간의 잘 살고 싶은 욕망을 무시한 분배 정책으로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어, 결국 공산주의를 포기하게 됩니다. 막상 공산주의 덕(?)을 본 건 자본주의였고, 공산주의 국가들은 공산주의때문에 망하게 된 역사의 아이러니를 우리들은 지켜본 바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이 책 공산단선언을 금서로... 

 

이렇게 공산주의가 끝나고 역사는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죽은지 30년이 다 지난 ‘공산주의의 유령'이 또다시 '전세계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부자들과 독점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수익을 벌어가지만, 중산층 이하 사람들의 삶은 점점 열악해지고,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AI까지 등장하여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중산층 인텔리들의 일자리까지 위협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마르크스 시절에는 그래도 노동자들 없이는 자본가들도 사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그래도 협상력을 가질 수 있었지만, 점점 더 많은 일들을 로봇이 대신할 수 있게 된 요즘 상황에선 무산계급 노동자들의 존재의의(?)는 자본가들이 만드는 상품을 사주는 역할 외에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노동자들한테도 어느 정도 잘 해주어야 자기들한테도 좋다고 생각한 20세기 초중반 자본가들과 달리, 일론 머스크 같은 21세기 자본가들은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거의 신경을 안쓰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에서 더 심하면 심했지 못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절반이 전체 자산의 98%를 가지고 있고, 근로소득세를 한 푼이라도 내는 사람이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절반을 겨우 넘는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5천만명 중 2천만명 정도는 거의 실질적인 무산계급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예언대로 우리나라의 무산계급들이 단결하여 유산계급에 맞설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들을 흙수저라고 하면서도 금수저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도 많고, 금수저들을 선망하면서 자기보다 못한 약자를 낙인찍기하며 공격해대는 흙수저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프롤레타리아’들은 매우 체제순응적이지만, 마르크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체제에 저항하기도 합니다. 남들은 어쨌건 나만은 금수저가 되기를 다들 열망하지만, 좋은 아파트로 이사가고 아이들을 좋은 학교로 보내려는 신분상승의 욕망을 끝내 충족하지 못하리라는 절망에 빠지게 되면, 결국 그런 이들은 결혼과 출산까지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중간이 없는 한국인 합계 출산율 0.86. 사회의 자살을 의미하는 수치입니다. 뭐 앞으로 기계가 대부분의 일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니 나름 절묘한 균형이 이뤄지기를 기대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 우리나라 자본가들의 앞날은 당분간 끄떡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우리 사회에 몇 안될,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에게 이 책 <공산주의자 선언>은 여전히 깊은 함의를 가질 것입니다. 비록 공산주의 그 자체는 실패로 끝났지만, 공산주의자들이 제기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옳든 그르든 여러가지 사상들이 경쟁하면서 또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늘 보여주어야 사회가 더 건강해질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산주의는 다른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자들에게 더욱 소중한 아이디어로 앞으로도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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